[뉴스엔뷰]노조 지도부 선거 기간 중 전격 단행된 한화생명의 무원칙한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수년간 그룹의 싱크탱크 기능을 해 온 경제연구원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은 희망퇴직의 ‘희생양’이 됐지만, 정작 관련 임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일 한화생명 및 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8월1일자로 경제연구원을 해체하고 기존의 은퇴연구소를 보험연구소로 확대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연구원의 희망퇴직자는 일반직 연구원 7명에 한정됐으며, 상무급 임원 4명은 직책을 유지한 채 신설 보험연구소로 편입됐다. 기존의 은퇴연구소 인력과 경제연구원 출신 인력을 합쳐 구성한 보험연구소는 일반직원은 20명에 불과하지만, 상무보급이상 임원은 5명(소장 포함)에 달하는 등 인력 구성이 기형적이라는 평가다.
한화생명 한 관계자는 “20명 남짓한 실무인력에 임원이 4명이나 되는 부서는 거의 없다”며 “희망퇴직 결과 윗사람들만 자리를 보존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희망퇴직과 조직개편이 8월 노조 지도부 선거 직전 추진된 것에 대해, "회사측이 노조가 힘을 결집할 수 없는 상황을 계획적으로 이용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제연구원 희망퇴직자 가운데 한명은 퇴직을 거부하자 서울 시내 모 지점으로 발령이 났으며 또 다른 퇴직 대상이던 한 직원은 김승연 회장의 차남 동원씨가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 SI(시스템통합)계열사의 신사업 관련 TF팀으로 발령 나는 등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한 직원은 “구조조정이 필요했다면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퇴직 조건을 제시하고 직원들에게 퇴직 희망 의사부터 물었어야 했다”며 “원칙없는 희망퇴직을 비밀리에 진행하다보니 보복성 인사조치나 계열사 차출 같은 부작용을 낳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해체된 경제연구원의 실체는 무엇일까. 경제연구원은 생명 및 계열사 사업 관련 리서치 기능을 수행해오다 지난 2011년 말 이명섭 전 원장이 부임하고 이듬해 8월 김승연 회장이 배임,횡령 혐의로 법정구속되면서 김 회장 재판 관련 정보수집, 정무활동 지원, 오너 일가 경영권 승계 관련 연구지원 등으로 그 역할이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정보수집을 위해 국정원 출신의 모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올해 초 김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자 수명을 다한 경제연구원의 해체도 본격적으로 논의됐다는 게 그룹 안팎의 전언이다.
특히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원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측근인 유력인사가 연구원 해체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 재판을 거치는 동안 그룹 내 유력 임원 간 권력다툼도 치열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연구원 해체까지 이어진 것 아니겠느냐”며 “애꿎은 직원들만 희생양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화생명 관계자는 “경제연구원 해체는 보험 관련 연구 및 정책기능 전문화를 통한 현업 지원 강화 차원에서 유사 기능을 통합 재편한 것일 뿐”이라며 “구조조정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금융권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화생명은 올 가을 대대적인 2차 인력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경제연구원 해체가 신호탄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신임 노조 지도부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힘의 공백기를 틈 타 사측의 구조조정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