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지난 1999년 7월1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우센터의 기자회견장. 당시 김우중 대우회장은 “사재 1조3000억 원을 포함, 계열사 주식 등 총 10조원에 이르는 담보를 채권은행에 내놓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8월26일 대우 12개 계열사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며 11월1일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사장단이 모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대우그룹이 해체되며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 오는 26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비공개 증언이 담긴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출간될 예정이다. 이날 출간기념회를 가진 후 일반에 판매할 것으로 알려진 이 회고록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집필했다.

신 교수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회고록 발표회를 진행하며 이어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대우그룹 전직 임직원 500여명과 재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 강연이 예정돼 있다.
이 회고록에는 IMF당시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과 경제 관료들과의 충돌은 물론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자동차 등의 부실 과정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고록에서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유동성 악화와 워크아웃에 대해 “대우의 유동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계기는 당시 금융감독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한 유동성 규제조치였다”며 “대우 유동성 위기에 대한 정부 측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우그룹 해체의 원인으로 평가받는 대우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 간 협상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내용과 김 전 회장의 입장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정부가 ‘국민경제의 더 큰 손실을 막는다’며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대우자동차를 거의 공짜로 넘긴 판단은 크게 잘못됐다”며 “이 때문에 한국 경제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은 회고록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대북특사’로 활동하며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낸 데 이어 노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을 성사 직전까지 진행시켰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한편 지난 1967년 봉제품을 전문으로 수출하는 소규모 무역 업체 대우실업(주)로 출발한 대우그룹은 30여년 만에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지난 1999년 8월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 결정 이후 현재 해체된 상태다.
이와 함께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분식회계 등의 협의로 구속 기소된 후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았으며, 지난 2008년 1월 특별사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