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화재로 딸을 잃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이한탁씨가 드디어 석방이 됐다.
1989년 7월 29일 오전 3시경.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 헤브론 수양관 건물에서 돌연 화재가 발생했다. 이곳엔 이한탁씨(당시 54세)와 큰딸 지연씨(당시 20세)가 있었다.
1978년 뉴욕에 이민 온 이씨는 아내와 두 딸 등 가족과 함께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 그러나 지연씨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됐다.

지연씨의 우울증 때문에 다니던 교회에서 기도를 권유받은 이씨는 사건 전날 지연씨와 함께 포코노의 수양관으로 갔다. 이 길이 이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길이 되고 말았다.
당시 뉴욕중앙일보에 따르면 수양관에 도착후 숙소에서 취침한 이씨는 매캐한 냄새에 잠이 깼고 황급히 탈출했지만 지연씨는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당초 화재 원인은 숙소가 낡은 건물이라는 점 때문에 누전인 것으로 판단됐으나 수사 과정에서 방화 사건으로 바뀌었고 방화범으로 몰려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 같은 사실이 한인사회에 알려지면서 2000년대 초 이씨의 후배인 손경탁 위원장을 비롯한 한인들이 이한탁구명위원회를 만들었다. 구명위원회가 자금난에 봉착하자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도 수임료를 받지 않겠다고 힘을 보탰고 이씨의 무죄 입증에 전력투구했다.

마침내 연방항소법원에서 항소가 받아 들여져 19일 석방을 명령받았다.
22일 오후 1시45분경 해리스버그 연방법원에서 판사의 석방결정문 서명직후 이한탁씨가 나타나는 순간 법원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이 일제히 몰렸다. 이날 취재진은 교회일보 등 뉴욕의 한인언론은 물론, 본국에서 파견된 특파원들과 CBS-TV와 WGAL-TV 등 미주류 언론 등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리는 등 뜨거운 취재열기를 보였다.
손경탁 위원장과 김영호 목사등 구명위원회 관계자들과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 등이 함께 한 가운데 이한탁씨는 아직 석방이 실감나지 않는듯 했다.
회색 양복에 밝은색 넥타이를 착용한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회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석방 소감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씨는 “지난 25년간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게 억울하지만 이렇게 나오게 돼 기쁘다. 그동안 도와주신 한국과 미국의 모든 동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고생하는 동포들이 있다. 그분들게 내가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계속 더 많은 사랑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한탁구명위원회는 이날 플러싱에 도착하는대로 병원에 입원, 정밀 검진을 받게 될 것이라며 구명위원회가 마련한 아파트에서 간병인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