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 장편소설 '유리' 출간
박범신 작가 장편소설 '유리' 출간
  • 이유정 기자 newsnv@abckr.net
  • 승인 2017.11.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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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뷰]

"소설 '유리'는 지금까지의 내 소설에 비해 스케일이 무지 크고 아주 재미있다."

- 박범신 작가

 

박범신 "유리" '작가의 말' 전문

2017.11.22. 팬카페 <와사등>에 공개.

이야기하는 바람’에의 남은 꿈

내 귓구멍 속에 곰팡이가 산다. 면봉이나 손가락으로 후비면 단박에 진물이 흐른다. 이해 안 되는 말을 들어야 할 때나 글을 써야 하는데 쓸거리가 익지 않았을 때는 더욱 그렇다. 오래전 '내 귀는 낙타등허리'라는 단편을 쓴 적도 있다. 진물이 흐르고, 딱지가 앉고, 또 진물이 흐르는 악순환의 지속으로, 고질병이다.

나의 오랜 귓병이 이 소설 《유리》를 만들었다.

‘유리流離’는 1915년 태어나 2015년에 죽는다. ‘걸식乞食’과 함께, 풍운의 근대 백 년, 동아시아를 숨 가쁘게 내닫는 맨발의 사나이 유리의 백 년 인생을 그리면서 내가 자주 맞닥뜨린 건 내 안에 은닉되어 있는 꿈의 실체이다. 애초 착한 지향을 갖었다해도 집단으로 묶이면 죄악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어떻게 살든지 간에 아나키즘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리’는 은닉돼 있던 내 꿈의 사실적인 변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겁게 쓰지 않으려고 했다. 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시아전도가 늘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길은…… 우리를 속여왔다’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고, 앞서가는 사람이 길을 만든다는 식의 잠언에 속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침없이 썼다. 이야기는 절로 아귀가 맞춰졌고 문장은 손끝에서 스스로 완결되는 느낌이었다. ‘행복한 글쓰기’에 도달했다고나 할까, 퇴고과정에서 오백여 매나 되는 원고를 더 써보탠 지난여름에도 내내 그러했다.

'자유의 문’에 다가서는 기분이었다.

매일 상승하고 매일 추락하는 일. 끔찍한 생성 황홀한 멸망의 나날. 유리에게 ‘맨발’이 있듯이 내겐 오래 제련해온 "나의 문장"이 있다. 그리고 유리처럼 나 역시 일찍이 나의 ‘주검’을 여실히 본 적이 있는바, 이 외 다른 길을 상상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당연히 나는 어제-오늘-내일도 이야기하는 바람으로 살기를 바란다.기억해주기를. 나는 "이야기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야기’로서 나는 당신을 잡을 수 있지만 당신은 ‘바람’인 나를 결코 잡을 수 없을 거라고 상상하면 짜릿하다.

오랜 시간 이 길을 여일하게 걸어올 수 있도록 허용해준 지난 시간에게, 함께 걸어준 독자들께, 그리고 좋은 책으로 엮어준 은행나무 출판사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간의 절벽에 이를 때까지 이 걸음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 나의 문제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통이다. 더 삼가하고 더 헌신하는 마음으로 그 고통의 심지에 지속적으로, 가열차게 다가가고싶다.

 

~2017 늦가을 바람부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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