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뷰] 지난 2013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총수 일가의 보수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세간에는 총수 일가의 등기임원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의 보수 내역을 공개하라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특히 재벌 총수들이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대기업들에 많은 관심이 쏟아진 것이다. 하지만 등기임원에 오르지 않거나 등기임원 보수 공개 후 교묘하게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난 총수 일가에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권리는 누리고 싶고 의무는 피하려는 얄팍한 꼼수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온다. <편집자 주>

박성수 이랜드 그룹 회장은 업계에서 ‘은둔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경영 전면에 나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룹은 지주사인 이랜드월드를 포함해 계열사만 29곳이나 되지만, 박 회장은 이중 등기임원 직함을 갖고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계열사에서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박 회장이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은둔의 대명사’, 주요 매각에 관여하면서 미등기임원?
그렇다고 박 회장이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중요한 인수합병(M&A)나 회사 매각에는 발 벗고 나선다.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랜드제주리조트와 이랜드파크가 비앤엠개발에 제주켄싱턴호텔과 상록호텔을 1280억 원에 매각할 때도 박 회장이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이랜드는 지난해에도 MBK파트너스에 모던하우스를 매각했고, 최근에는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키스톤PE)에 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약 3000억 원의 투자 금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대주주인 박 회장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박 회장은 그룹 또는 계열사에서 책임을 가질 만한 등기임원과 미등기임원 직함은 갖고 있지 않다. 박 회장이 계열사에서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면 공식적으로 보수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도 말이다.
이에 대해 이랜드그룹 측은 등기임원 전환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하면서도 '책임경영 강화차원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랜드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그룹이 법인별로 운영되고 있는 마당에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있으면서 회사에 관여한다면 오히려 좋지 않는 시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룹의 외형이 커져 오너 일가는 총괄개념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전문 경영인을 통해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계, ‘오너 리스크’ 최소화...고액 연봉공개 꺼려도 한 몫
재계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박 회장이 미등기임원으로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너 리스크 최소화라는 것. 상법상 주식회사 대표이사는 법적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우에 따라선 사법처리 등의 위험이 뒤 따른다. 오너의 사법처리로 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또 대기업 오너 일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적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너 및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직을 맡지 않는다고 해서 그룹을 총괄(?)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사임의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부담되는 연봉공개 등 제도 변화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연봉 5억 원이 넘는 등기이사의 보수 공개가 의무화되고 있는 것도 대표이사 사임 이후 이사직까지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올해부터는 등기임원이 아니더라도 한 계열사에서 5억 원 이상 보수를 수령하고 보수총액 기준으로 상위 5명에 포함될 경우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굳이 위험을 떠안겠느냐”고 귀뜸했다.